토미 캐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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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미 캐시디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에는 글렌토런, 뉴캐슬 유나이티드, 번리, APOEL 등에서 활약했으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으로 1982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감독으로서 APOEL, 글렌토런, 아즈, 슬라이고 로버스, 워킹턴, 블라이스 스파르탄스 등을 지휘하며 여러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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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캐시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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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전체 이름 | Thomas Cassidy |
출생지 | 벨파스트 (북아일랜드) |
포지션 | 은퇴 (과거 미드필더) |
클럽 경력 | |
청소년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클럽 연도 | 1968–1970: 글렌토런 1970–1980: 뉴캐슬 유나이티드 1980–1983: 번리 1983–1985: APOEL |
클럽 출장수 (골) | 1968–1970: 글렌토런: 14 (7) 1970–1980: 뉴캐슬 유나이티드: 180 (22) 1980–1983: 번리: 72 (4) 1983–1985: APOEL: 44 (7) 합계: 299 (33) |
국가대표팀 경력 | |
국가대표팀 연도 | 1971–1982 |
국가대표팀 | 북아일랜드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24 (1) |
감독 경력 | |
감독 연도 | 1985–1989: APOEL 1993–1994: 게이츠헤드 1994–1997: 글렌토런 1998–1999: 아즈 1999–2001: 슬라이고 로버스 2001–2007: 워킹턴 2007–2008: 뉴캐슬 블루 스타 2010–2011: 휘트비 타운 2011–2012: 블라이스 스파르탄스 |
2. 선수 경력
벨파스트 출신인 토미 캐시디는 10대 시절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1969년 시티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 글렌토런의 7-1 대승을 이끌었다.[1]
1970년 10월, 15000GBP의 이적료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1] 초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역할을 변경했다. 1973-74 시즌 텍사코컵 결승전에서 번리를 꺾고 우승했고, FA컵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 리버풀에 패해 준우승했다.[1]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1974-75 시즌 텍사코컵 결승전에서 사우샘프턴을 상대로 합계 3–|영어1 승리를 거두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1] 1975-76 시즌에는 리그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맨체스터 시티에 1–|영어2로 패하며 다시 한번 준우승했다.[1]
1979-80 시즌은 캐시디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한 시즌이었다.[2] 1979년 12월 15일 퀸스 파크 레인저스전에서 18미터 발리슛으로 득점(최종 4–|영어2 승리), 선덜랜드와의 새해 첫날 경기에서 장거리 쐐기골을 기록하며 3–|영어1 승리에 기여했다.[2] 그는 이 골에 대해 "22,720 리터의 맥주 가치를 했다"라고 회고했다.[2]
1980년 여름, 30000GBP의 이적료로 번리에 입단,[2] 1981-82 시즌 3부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1] 이후 ΑΠΟΕΛ|APOELel로 이적해 컵 대회와 키프로스 슈퍼컵에서 우승했다.[3]
2. 1. 클럽 경력
벨파스트 출신인 토미 캐시디는 10대 시절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1969년 시티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 글렌토런의 7-1 대승을 이끌었다.[1]1970년 10월, 15000GBP의 이적료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1] 초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역할을 변경했다. 1973-74 시즌 텍사코컵 결승전에서 번리를 꺾고 우승했고, FA컵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 리버풀에 패해 준우승했다.[1]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1974-75 시즌 텍사코컵 결승전에서 사우샘프턴을 상대로 합계 3–|영어1 승리를 거두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1] 1975-76 시즌에는 리그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맨체스터 시티에 1–|영어2로 패하며 다시 한번 준우승했다.[1]
1979-80 시즌은 캐시디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한 시즌이었다.[2] 1979년 12월 15일 퀸스 파크 레인저스전에서 18미터 발리슛으로 득점(최종 4–|영어2 승리), 선덜랜드와의 새해 첫날 경기에서 장거리 쐐기골을 기록하며 3–|영어1 승리에 기여했다.[2] 그는 이 골에 대해 "22,720 리터의 맥주 가치를 했다"라고 회고했다.[2]
1980년 여름, 30000GBP의 이적료로 번리에 입단,[2] 1981-82 시즌 3부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1] 이후 ΑΠΟΕΛ|APOELel로 이적해 컵 대회와 키프로스 슈퍼컵에서 우승했다.[3]
2. 1. 1. 글렌토런
벨파스트 출신으로, 10대 시절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1969년에 아일랜드 리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1969년 시티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글렌토런은 이 경기에서 뱅고어를 7-1로 크게 이겼다.[1]2. 1. 2. 뉴캐슬 유나이티드
1970년 10월, 캐시디는 15000GBP의 이적료로 잉글랜드 1부 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1] 뉴캐슬에서 초기에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역할을 변경했다.1973-74 시즌, 캐시디는 뉴캐슬의 주전 선수로 도약하여 텍사코컵 결승전에서 번리를 꺾고 우승하는 데 기여했고, FA컵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 리버풀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1]
잦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1974-75 시즌 텍사코컵 결승전에 출전하여 사우샘프턴을 상대로 합계 3–|영어1 승리를 거두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1]
1975-76 시즌에는 리그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맨체스터 시티에 1–|영어2로 패하며 다시 한번 준우승을 경험했다.[1]
캐시디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한 시즌은 1979-80 시즌이었다.[2] 그는 1979년 12월 15일 퀸스 파크 레인저스를 상대로 18미터 지점에서 발리슛으로 득점하여 3–|영어2 리드를 이끌었고 (최종 4–|영어2 승리), 이후 선덜랜드와의 새해 첫날 경기에서는 장거리 쐐기골을 기록하며 3–|영어1 안방 승리를 확정지었다.[2] 그는 이 골에 대해 "22,720 리터의 맥주 가치를 했다"라고 회고했다.[2] 그러나 뉴캐슬은 시즌 막판 부진으로 리그를 9위로 마감했다.[2]
2. 1. 3. 번리
1980년 여름, 캐시디는 30000GBP의 이적료로 3부 리그의 번리에 입단했다.[2] 그는 1981-82 시즌 번리의 3부 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의 승격에 기여했다.[1]2. 1. 4. APOEL
ΑΠΟΕΛ|APOELel로 이적해 컵 대회와 키프로스 슈퍼컵에서 우승했다.[3]2. 2. 국가대표 경력
캐시디는 1971년 잉글랜드와의 홈 네이션스 토너먼트 경기에서 에릭 맥모디와 교체 투입되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1] 그 다음 시즌에는 소련과의 유럽 선수권 대회 예선전 경기에서 교체 출전했다. 1973-74 시즌,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1-0 결승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표팀 득점이었다.[1]1970년대 중반,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캐시디는 북아일랜드 대표팀 주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대니 블랜치플라워 감독과의 불화로 2년 동안 대표팀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블랜치플라워 감독의 막판 몇 경기에 복귀하여 잉글랜드전(1-5 패)과 아일랜드전(1-0 승)에 출전했다.[1]
1980년, 빌리 빙엄 감독이 북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캐시디는 수비적인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다. 그는 북아일랜드가 1980년 홈 네이션스 선수권 대회에서 66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데 기여했다.
1981년 11월, 캐시디는 마틴 오닐을 대신하여 스페인 월드컵 본선 진출권이 걸린 이스라엘과의 예선전에 출전했다. 북아일랜드는 이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고, 캐시디는 1982년 FIFA 월드컵 스페인 본선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는 스페인과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부상당한 새미 매킬로이와 교체 투입되어 10명으로 수적 열세인 상황에서도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1]
3. 감독 경력
토미 캐시디는 APOEL, 글렌토런, 아즈, 슬라이고 로버스, 워킹턴, 블라이스 스파르탄스 등 여러 팀의 감독을 역임했다.[3][2][4][6]
3. 1. APOEL
ΑΠΟΕΛel로 이적해 선수로 컵과 슈퍼컵을 우승했다. 이후 APOEL의 감독이 되어 1985-86 시즌 키프로스 리그를 우승했고, 1986년 슈퍼컵 우승을 달성했지만, 경기 부정 문제로 구단을 떠났다.[3]3. 2. 글렌토런
캐시디는 1994년 글렌토런 감독으로 부임하여 골드컵 우승을 차지했다.[3] 1996년 글레너번과의 아이리시컵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3] 1997년 12월, 성적 부진과 팬들의 압박으로 인해 팀을 떠났다.[3]3. 3. 아즈
캐시디는 1998년에 아즈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1999년 10월에 1부 리그 승격에 실패하여 해임되었다.[2]3. 4. 슬라이고 로버스
토미 캐시디는 1999년에 슬라이고 로버스 감독으로 부임했다.[4] 부임 후 첫 안방 경기에서 슬라이고를 이끌고 섐록 로버스에 3-5로 패했으며, 이 경기에서 캐시디는 퇴장당했다. 캐시디는 슬라이고 로버스의 1부 리그 강등을 막지 못했다.[5] 이듬해 슬라이고는 최종전에서 홈 팜에 1-4로 패하며 승격에 실패했고, 캐시디는 그 해 여름 슬라이고 로버스를 떠났다.3. 5. 워킹턴
캐시디는 새미 매킬로이 북아일랜드 감독을 위해 아이리시 리그 선수들을 잠깐 스카우트했고, 이후 북아일랜드 1부 리그 워킹턴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워킹턴을 이끌고 2004년에 프리미어십으로 승격시켰고, 준우승으로 북부 풋볼 컨퍼런스에 승격했다.[6]3. 6. 블라이스 스파르탄스
Tommy Cassidy영어는 2011년 12월 16일에 블라이스 스파르탄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6] 2012년 10월, 성적 부진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6]4. 수상 내역
토미 캐시디는 선수 시절 다음과 같은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다.
4. 1. 선수
팀 | 대회 | 시즌 |
---|---|---|
글렌토런 | 시티컵 | 1969–70 |
뉴캐슬 유나이티드 | 코파 안글로-이탈리아나 | 1973 |
텍사코컵 | 1973–74, 1974–75 | |
FA컵 | 1973–74[8] | |
번리 | 3부 리그 | 1981–82 |
APOEL | 키프로스컵 | 1983–84 |
LTV 슈퍼컵 | 1984 |
참조
[1]
웹
https://www.rsssf.or[...]
[2]
웹인용
Former Newcastle star Tommy Cassidy hit by 'heartbreaking' Alzheimer's battle
https://www.chronicl[...]
2022-07-27
[3]
웹인용
Glentoran Football Club - the Pride of East Belfast - History
http://www.glentoran[...]
[4]
웹
https://web.archive.[...]
[5]
웹
http://www.rte.ie/sp[...]
[6]
웹인용
Cassidy goes at Blyth
http://www.nonleague[...]
NonLeagueDaily.com
2012-10-10
[7]
뉴스
Ex-Northern Ireland star Cassidy has Alzheimer's: Wife of World Cup ace opens up about battle with disease
https://www.belfastt[...]
2022-07-27
[8]
서적
Rothmans Football Yearbook 1977–78
Brickfield Publications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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